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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a trip/경북 한옥여행4

영천 옥간정, 정자를 지어 학문에 전념하다.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만양과 정규양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로 옥간정 앞에는 계곡물이 흐러고 계곡을 향해 있는 마루에 올라서면 선비가 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영일 정씨(迎日鄭氏) 후손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훈수(塤叟)이며, 아우 정규양(鄭葵陽)[1667~1732]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함께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과 우애로 여생을 보내며 영의정 조현명(趙顯命), 형조참의 정중기(鄭重器) 등 많은 명현과 석학들을 길러냈다. 정만양은 아우 정규양의 거처인 태고와[모고헌]를 왕래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했고, 항상 저.. 2023. 1. 15.
경북 상주 의암고택 운곡(雲谷)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의암고택(依巖古宅)은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건물이다. '의암(依巖)'은 조범구(趙範九)선생의 호로서, 의암고택이라는 당호는 후대인이 의암 조범구 선생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붙인 건물명칭이다. 이 집으로 드나드는 대문 앞에 있는 탕건 모양의 큰 바위를 '탕건석'이라 하는데, 관습적으로 사람들이 이 탕건석을 '의암'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의암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서, 정침(안채)과 사랑채, 안사랑채, 고방채, 대문간채, 사당, 뒤주채, 장독대 등 조선 시대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고루 갖춘 집이다. 1986년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10월(경상북도 고시 2012.10.22)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53호 '.. 2023. 1. 12.
성주 완정고택 우리나라 곳곳에는 옛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택들이 많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한옥 특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요즘엔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성주에 있는 완정고택을 찾았습니다.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가옥입니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택은 뒤로 야산을 두고 좌, 우로 논과 밭이 있어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안내 이 가옥은 벽진이씨의 집성촌인 홈실[명곡(椧谷)]마을 뒤쪽 야산을 배후 하여, 정방형에 가까운 토담 속에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가옥으로 완석정(浣石亭) 이언영(李彦英, 1568~1639)의 종택이다. 종택은 이언영의 7세손인 이존영(李存永, 1787~1849)이 건립하였다.. 2022. 12. 30.
영천 지산고택 이 건물은 조선 선조 때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종가에서 대대로 사용하는 종택이다. 조호익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6세인 명종 15년(1560년)에 생원-진사에 합격하고 문과 초시에도 합격하였다. 그러나 선조 9년(1576년)에 강동에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관서부자의 어필을 하사 받았다. #관서부자 : 관서 유학자를 기리는 영예로운 칭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군민을 모으고 중화와 상원 등 여러 지역에서 공을 세웠다. 그 후 성주목사를 거쳐 1595년 안주목사가 되고 이어 성천과 정주의 목사를 역임한 뒤 그만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강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고 이후 선산부사에 임명되었으.. 202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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