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영천가볼만한곳2 영천 옥간정, 정자를 지어 학문에 전념하다.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만양과 정규양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로 옥간정 앞에는 계곡물이 흐러고 계곡을 향해 있는 마루에 올라서면 선비가 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영일 정씨(迎日鄭氏) 후손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훈수(塤叟)이며, 아우 정규양(鄭葵陽)[1667~1732]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함께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과 우애로 여생을 보내며 영의정 조현명(趙顯命), 형조참의 정중기(鄭重器) 등 많은 명현과 석학들을 길러냈다. 정만양은 아우 정규양의 거처인 태고와[모고헌]를 왕래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했고, 항상 저.. 2023. 1. 15. 영천 지산고택 이 건물은 조선 선조 때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종가에서 대대로 사용하는 종택이다. 조호익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6세인 명종 15년(1560년)에 생원-진사에 합격하고 문과 초시에도 합격하였다. 그러나 선조 9년(1576년)에 강동에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관서부자의 어필을 하사 받았다. #관서부자 : 관서 유학자를 기리는 영예로운 칭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군민을 모으고 중화와 상원 등 여러 지역에서 공을 세웠다. 그 후 성주목사를 거쳐 1595년 안주목사가 되고 이어 성천과 정주의 목사를 역임한 뒤 그만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강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고 이후 선산부사에 임명되었으.. 2022. 12. 23. 이전 1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