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경연대회 우승자, 정치 풍자에 능한 코미디언,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젤렌스키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코미디언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국민의 종'이라는 정치 풍자 드라마입니다. 부패와 대립으로 얼룩진 당시 우크라이나 정치권에 질렌스키는 답답한 현실에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리는 대통령을 연기했고 이에 국민들의 호응은 뜨거웠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성장기
1978년 1월 25일 우크라이나가 아직 소비에트 연방으로 있던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중부 크리비리흐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의 올렌산드르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경제연구소의 사이버 네트워크 및 컴퓨터 하드웨어학과 교수로 있었으며 어머니 림바 젤렌스키는 공학자였는데 그러다 보니 볼로디미르는 나름 좀 사는 집의 아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그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몽골의 에르데네트에서 4년 정도 살다가 다시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문법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 그의 어릴 적 꿈은 국경수비대가 되거나 외교관, 번역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볼로디미르는 우크라이나의 최고 명문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하고 이후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재능
대학 졸업 후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사실 볼로디미르는 공부도 공부였지만 무엇보다 예능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고 17살에는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유명한 경연 프로그램인 KVN에도 참여했습니다. 볼로디미르는 이 코미디 경연대회에 10대 후반부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해 스무 살이 된 1997년에는 우크라이나 대표팀에 합류해 결국 우승까지 차지하기게 됩니다. 그리고 우승한 바로 그해 볼로디미르는 동료들과 함께 '크바르탈 95'라는 코미디 팀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코미디언으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결혼
그러던 2003년 9월 27살이 된 볼로디미르는 소꿉친구였던 올레나 키야슈코와 8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고 1남 1녀의 자녀를 얻게 됩니다. 8년 동안 사귀던 당시 올레나는 남자친구였던 볼로디미르를 따라 자주 코미디 팀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는데 그러다 나중엔 본격적으로 팀의 작가가 되어 일을 함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엔터테이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처음엔 코미디 팀으로 시작한 '크바르탈 95'는 어느새 번듯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성장하여 우크라이나의 유력 방송국인 1+1티비나 인테르 티비와도 계약을 맺을 정도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다 2005년엔 '이브닝 크바르탈'이라는 쇼 프로그램까지 성공시키며 볼로디미르는 우크라이나의 국민 MC로 유명세를 떨치게 됩니다. 또 2006년엔 우크라이나판 '댄싱 위드 스타'에 출연해 그야말로 대세 연예인으로 부와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인테르TV에 이사겸 총프로듀서로 활동 영역까지 넓혀가게 되는데 한마디로 코미디언으로 시작해 MC, 배우, 기획자, 각본, 제작자까지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볼로디미르가 코미디언으로, 배우로, 제작자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을 연기하다.
그런 그의 운명을 바꿔버린 계기가 생겼습니다. 바로 '크바르탈 95'에서 제작하여 2015년에 우크라이나 1+1 티비에서 방영된 '국민의 종'이라는 시트콤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트콤에서 볼로드미르는 30대 역사 교사 역을 연기했습니다. 시트콤의 내용을 간단히 보면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낀 역사 교사가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며 친구들을 장관에 앉혀 부패한 정치를 몰아낸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트콤이 평균 40에서 50%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고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그야말로 대히트를 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볼로디미르는 다시 한번 국민적인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종종 "진짜로 대통령이 될 마음은 없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그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국민의 종 창당, 대선 출마
2018년 3월 '국민의 종' 출연진들이 시트콤 속 정당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 '국민의 종'이라는 신당을 실제로 창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당의 로고 역시 시트콤 속 당의 로고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31일 볼로디미르는 드디어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됩니다. 곧바로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볼로디미르가 현직 대통령인 포르셴코나 총리를 지낸 티모시엔코 등 다른 쟁쟁한 후보들을 따돌리고 줄곧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기존에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에 신물이 나 있었는데, 볼로디미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 모두가 비리, 탈세, 극우, 매국 등으로 엉망진창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후보들 사이에서 아직 정치나 부패의 때가 묻지 않은 볼로디미르는 그야말로 세상을 변화시켜 줄지도 모를 신선한 얼굴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
실제로 볼로디미르는 시트콤의 주인공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각종 개혁 공약들을 내놓았습니다. 부패 세력을 뿌리 뽑고 부동산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고 각종 세제 개편을 단행하겠다고 말입니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쟁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헌하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2019년 3월 30일 드디어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볼로디미르는 1차 투표에서 30.24%를 2차 결선 투표에서 73.2 %를 기록하면서 2위인 포르셴코 전 대통령을 50% 가까운 큰 표차로 누르게 됩니다. 이때 볼로디미르의 나이는 42살,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것이었습니다.
지지도 추락
그렇게 대통령이 된 블로드미르는 곧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해 의회를 장악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의회 내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그러자 볼로디미르는 취임 직후 아예 의회를 해산시켜 버리고 내각 총사퇴를 요청한 뒤 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습니다. 이후 열린 조기 총선에서 '국민의 종'은 대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로써 볼로드미르는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마음껏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집권 초기 그는 농지 시장을 개방하고 디지털 서비스를 확대하고 도로도 대규모로 확충하는 등 나름의 정책들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트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볼로디미르는 돈바스 지역의 내전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었지만 내전은 쉽게 끝나지 않았으며 부패 척결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2022년 1월에 여론조사에선 볼로디미르의 재선을 원한다는 답이 23%에 불과하게 됩니다.
인사실패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무엇보다 인사실패였습니다. 볼루디미르는 자신의 부족한 정치력을 보완해 줄 인사를 기용하지 않고 코미디언 시절 함께했던 '크바르탈 95'의 피디나 작가, 코미디언과 친척들을 정부 요직이나 보좌진에 임명한 것입니다. 최측근인 대통령궁 실장은 영화 제작사 대표 출신이, 국가 정보 국장은 '크바르탈 95'의 대표 감독이, 대통령 보좌관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 임명되었는데 미국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볼로디미르가 국가요직에 임명한 '크바르탈 95' 사람은 총 36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국가정보국장이 된 '크바르탈 95'의 대표 감독은 국가정보국이 체포한 러시아 스파이들을 대거 풀어주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받겠다는 것이 정부국장의 큰 그림이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풀어준 스파이들이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결정적인 정보들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침공
2022년 6월 24일 새벽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러시아가 전쟁을 하는 표면상의 이유로는 우크라이나가 약속을 어기고 나토에 가입하려 했다는 것. 사실 나토는 소련에 대항하여 1949년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만든 군사동맹기구입니다. 이에 맞선 소련과 동구권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소련의 해체와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후 나투의 해체도 거론되긴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토는 덩치를 계속 키워 1949년 12개이던 가입국이 현재는 30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 나토의 원래 목적이 소련에 대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 입장에선 나토를 앞세운 미국의 군사 전초지가 러시아 바로 코앞에 들어앉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기를 쓰고 이를 반대하며 전쟁까지 벌이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두 나라 사이엔 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친러시아 지역 돈바스
그중 하나가 블로드미르가 공약으로도 내놓은 돈바스 지역입니다. 우크라이나 가장 동쪽에 있는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 일대의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와 딱 붙어있었는데, 아주 오래전 돈바스 지역을 포함한 동부 일대가 러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은 적도 있어서 이 지역엔 러시아 사람들도 많고 러시아의 문화나 풍습도 많이 남아 있죠. 그러던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성향의 정부가 물러나고 서방과 친한 정부가 들어서자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 크림반도에선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크림반도는 옛 소련 시절 러시아의 땅이어도 소련이 해체된 이후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땅이었는데 친서방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면 자신들을 더욱 차별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러시아로 귀속시켜 달라는 내용으로 시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크림반도의 절반 이상은 러시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덜컥 크림반도에 병력을 투입하여 주민투표를 거쳐 우크라이나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합병시켜 버렸습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2014년 5월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도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을 하겠다고 국민투표를 실시해 무려 90%의 지지를 얻으며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라는 자치공화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물론 일련의 이런 혁명이나 시위들이 순수하게 시민들의 의지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 분리주의자들을 반군으로 규정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반군을 상대로 내전을 벌여오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2014년부터 돈바스 지역에서 시작된 내전은 민간인을 포함해 1만 5000명이 목숨을 잃고, 4만여 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러시아로 피난길에 오르게 만들었습니다. 돈바스 지역 내전이 지속되자 유럽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두 번의 종전 협정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이 민스크 협정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이 두 나라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승인까지 덜컥해버렸습니다.
끝까지 싸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크림반도를 눈 뜨고 빼앗긴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우크라이나도 통째로 삼켜지지 않을까? 염려되어 나토라도 가입해 보호를 받고 싶었을 겁니다. 러시아의 진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러시아로선 미국을 필두로 한 나토가 자신의 코앞까지 밀고 들어올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볼로디미르에게 해외 피신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볼로드미르는 이를 거절하며 수도 키이우에 남아 총을 들고 우크라이나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시 90%가 넘는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며
세계 각국은 전쟁 반대를 외치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제재를 이어가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전쟁을 선언하면 죽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전쟁에서 어느 편이 스스로를 승자라고 부를지라도 승자는 없고 모두 패배자뿐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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