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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의 추억: 커피와의 첫 만남

by 궤적76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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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다방'이 존재하던 그때, 커피에 대한 첫 기억은 내 유년의 작은 범죄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대 대부분의 가정과 마찬가지로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으레 부엌에서 달콤한 커피 향이 풍겼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인 한국에서 그것도 70년대에서 80년대 초반에 녹차처럼 동양의 차가 아닌 커피가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식사 후 또는 여가시간에 일상적으로 마신다기보다는 손님 접대용으로 각 가정에 구비되었던 듯하다. 

아마 초등학교(초등학교)를 막 입학하던 때, 아니면 조금 더 어릴 때의 일이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지배하는 시기였기에, 눈을 뜨고 있는 한 미친 듯이 동네를 뛰어다니고 달콤하거나 상큼한 어떤 것이 눈에 띄면 주저 없이 입으로 가져가던 시절,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원초적 생존 에너지가 초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왕성한 에너지와 식탐만큼 호기심도 왕성했다. 

그날도 어머니 친구분들의 방문으로 집안은 시끌벅쩍했고, 나는 이제는 흥미가 떨어진 그래서 죄 많은 장난감들을 까만색 연필깎이 칼로 난도질하며 처벌하는 데 열중이었다. 부모님 방에서 들려오는 아줌마들의 오페라가 시작될 즘 부엌은 접시가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들과 향긋한 과일 향으로 가득 찼다. 전기포트에 물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 들렸고, 쪼로록 하며 물 따르는 소리가 한 아줌마의 아리아에 맞춰 들려왔지만, 나는 여전히 광기에 휩싸여 학살에 몰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커피와 설탕과 프리마를 물에 녹이기 위해 티스푼이 커피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과일과 커피의 달콤한 향이 내 등 뒤까지 풍겨왔다. 그 달콤함과 상큼함에 내 입안은 금세 축축해졌고 땀나게 쥐고 있던 흉기를 방바닥에 팽개치고 나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쟁반 위 하얀 접시에는 정성껏 깎인 반달 모양의 사과들이 이쁘게 담겨 있었고, 다섯 개의 꽃무늬 커피잔이 하얀 수증기를 피워 올리며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내 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접시로 날아갔지만, 마른 수건에 손을 닦으시던 어머니의 손이 초음속 제트기처럼 날아와 내 손등을 폭격해 추락시켰다. 어머니는 깎지도 않은 빨간 사과 하나를 던져주셨지만 나는 아름다운 사과 접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쟁반을 들고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셨고, 아리아의 절정을 노래하던 아주머니와 조연 아주머니들의 노랫소리는 쟁반을 반기는 ‘어머어머~’하는 함성과 함께 찻잔을 받아 드는 달그락 소리로 바뀐 후, ‘꽝 함께 방문은 닫혔다. 나는 빨간 사과 하나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묘한 향에 취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향기. 사탕처럼  달콤하고  땅콩버터처럼  고소하면서  초콜릿처럼  쌉싸름한 이전에도  손님들이  오면  집안을 가득 채웠던  그  향이었다. 그런데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나를  흥분시키기  보다는, 추운 겨울  창문을  열고 집 안을 환기시키며  청소할때,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릴 때처럼  묘한 아늑함이 느껴지는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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