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만양과 정규양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로 옥간정 앞에는 계곡물이 흐러고 계곡을 향해 있는 마루에 올라서면 선비가 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영일 정씨(迎日鄭氏) 후손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훈수(塤叟)이며, 아우 정규양(鄭葵陽)[1667~1732]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함께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과 우애로 여생을 보내며 영의정 조현명(趙顯命), 형조참의 정중기(鄭重器) 등 많은 명현과 석학들을 길러냈다. 정만양은 아우 정규양의 거처인 태고와[모고헌]를 왕래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했고, 항상 저서에 자신들의 호를 따 ‘훈지(壎篪)’라 하고 자손에게 모두 그 뜻을 따르도록 했다. 저서로는 『훈지양선생문집(壎篪兩先生文集)』 등이 전한다.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정만양·정규양 형제가 1716년(숙종 42) 강학을 위해 건립했다.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옥간정이 있는 곳은 보현산에서 발원한 횡계천이 퇴적암의 청석 암반[셰일과 혼펠스로 이루어진 바위]을 드러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앞의 횡계천을 내려다보며 시원한 경관을 정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기후에 영향을 받은 듯 누하 공간은 천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 측면 앞쪽을 돌담으로 막았다. 또 온돌방의 함실아궁이 양 옆도 바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정자 남쪽에는 횡계서당과 모고헌이 있다. 건물 내부에는 ‘성재(誠齋)’, ‘정재(定齋)’ 등의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다.
옥간정은 횡계천 변 암반 위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4.5칸의 ‘ㄴ’자형 맞배집으로 우측에 풍뇌정이란 건물과 함께 전체적으로 ’ㄷ’자형을 취하고 있다. 경내 북쪽과 서쪽은 토석 담장이 둘러져 있다. 도로에서 두 칸 대문채를 들어서면 먼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풍뇌정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고 풍뇌정을 돌아 들어가면 옥간정이 계변에 걸쳐 있다. 옥간정의 평면은 횡계천과 나란히 배치된 누각형 건물에 직교해 방과 서고가 풍뇌정 배치와 같은 향으로 놓인 ‘ㄴ’자형으로 되어 있다. 누각형 건물은 두 칸 대청 우측에 한 칸 온돌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편당형이다. 대청 좌측 칸 북쪽에는 직교해 온돌방 두 통칸 뒤로 서고 한 칸이 있다. 건물의 전면 계곡 쪽에는 퇴 칸 가장자리에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고 나머지는 쪽마루를 부설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청방 간에 모두 삼분합 들문을 설치해 유사시에 넓은 공간이 창출되도록 했다. 대청 우측의 방 전면과 측면에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고 배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두었다. 한편 대청 북쪽의 두 통칸 방은 측면에 외여닫이문만 부설했다. 서고는 동쪽 면에만 외여닫이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된 서고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진입은 배면 진입으로 대청 우측 칸의 배면 판벽에 외여닫이 판문으로 진입한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방과 퇴 칸 모두 원주를 세워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퇴 칸의 주 상부는 초익공으로 처리하고 주간에는 소로를 끼웠다. 대청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처리하고 방 앞의 퇴 칸 상부는 소란반자로 처리해 격식을 갖추었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에 박공 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했다.
옥간정(玉磵亭)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별빛로 122[횡계리 439-3]에 있다. 화북면소재지인 자천리에서 청송 방면의 노귀재로 가기 전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보현산 천문대로 향하면 중간에 횡계마을이 있다. 정자는 횡계서당(橫溪書堂)을 지나면 도로 변에 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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