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전반부엔전반부엔 야심이 보였지만 중반부터 어라 싶더니, 후반부에 무너진 좀 아쉬운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이나미는 곤약 젤리 판매업체 '맛있 곤약'의 마케팅을 담당합니다. 또 레시피 정보를 전달하는 팔로워 31만 인스타 계정 '키르케'를 몰래 운영하며 인플루언스의 삶도 사는 말하자면, 누구보다 스마트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죠. 그러다 어느 날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이를 연쇄살인마인 사이코패스 오준영이 주우며 이야기의 본론이 시작되는데요.
맨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깬 주인공이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체크하고,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확인한 뒤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틉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서 스마트 폰이 얼마나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일련의 몽타주 시퀀스로 전달하는데요. 대화하고, 사진 찍고, 길 찾고, 카드 찍고, 예약하고, 결제하고, 스마트폰은 이렇듯 다양한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 감각을 확장하기도, 내 몸의 일부가 되기도 하며 또 나아가서 나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런 점을 파고들죠.
잠시 후 오준영이 처음 등장하는데요. 그는 피해자 은미경의 휴대폰으로 태국 치앙마이를 위치로 설정하고 라면 사진을 찍은 뒤 은미경의 인스타 계정에 올립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통해서 은미경인 척하는 거죠. 이어서 다음 타깃으로 정한 이나미의 계정을 염탐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 것을 영화는 암시하는데요. 우리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피해가 심각하다는 공포를 의도하는 것입니다. 누가 내 핸드폰을 훔쳐보는 일, 그 자체가 끔찍한데 핸드폰으로 나인 척해서 내 인생을 끝장내려고 한다면...
그래서인지 주인공을 매우 매우 평범한 20대 여성 이나미로 설정해 마치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로 묘사한 것 같습니다. 분장과 의상도 수수하게 세팅했으며 이를 뒷받침하려 천우희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캐스팅은 좋았고 전체적인 판을 까는 시점도 괜찮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영화는 스스로 무너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선 원론적인 얘기부터 하자면 추리물을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크게는 처음부터 범인을 감추고 시작하는지,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주고 시작하는지 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후자에 속하며, 이는 고전적인 '후더닛' 구조와 상반되는 '하우 캐치'형 구조입니다. 일본 소설계에선 이를 각각 '본격 추리', '도서 추리'로 분류하기도 하죠. 이 '하우 캐치'형 구조에서는 시작부터 범인을 보여주고 범인 묘사에 공을 들이는데요. 기본적으로 범인이기 때문에 관객과 거리를 두는 묘사를 하지만 어떤 측면에선 개성이 뚜렷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품고도 있으며 특출 난 능력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범인들이 임자를 만나고, 임자는 범인의 허점을 파고들고, 범인이 때로는 전전긍긍하면서 또 다른 술수를 벌이며, 주거니 받거니 서로가 서로를 포섭하는 과정에서 리듬감을 형성하고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다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돌아오면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 오준영의 범행 수법을 묘사합니다. SNS를 염탐하고 이나미 이전에 피해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대뜸 죽이거나 납치하면 주변 사람들이 신고할 것이니 주변 사람들부터 떼어놓는 범인의 1차적 목표도 그럴싸하게 보여 주고 집중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 이나미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여기에 더해 경찰 우지만의 아들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더하며 앞으로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오준영의 동기는 생략이 되어 있죠. 이런 부분이 왜?라는 의구심을 주어 계속 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네 폰 내가 주었으니까." 정리하자면 범인을 보여주고 시작하며 범인이 절대악 사이코패스라는 점에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요. 그리고 <추격자>와 비교해 본다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왜 중반부터 맥이 빠지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추격자>에선 기존 피해자들이 출장 매춘부들이라 피해자 미진의 동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범인 지영민이 끔찍한 범행을 행하긴 하나 신체적으로는 엄중호에게 잡히고, 심리적으로는 "영민씨는 여자와 자본적 있냐."는 프로파일러에게 휘말리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사회에 대한 씁쓸한 블랙 코미디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긴장감은 사실상 스스로 포기한 셈입니다. 먼저 피해자가 범인에게 말려드는 방식이 조금 허무한데요. 주인공 이나미가 핸드폰을 분실하고 사설 수리점에서 핸드폰 비밀번호를 적어내는 모습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영화 초반부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로서 이나미를 묘사하고 그녀를 통해 현실성 있는 범죄와 그로 인한 공포를 묘사하려고 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나라도 저렇게 될 듯이라는 느낌이 중요했는데 여기 비밀번호를 적어내는 장면은 나라면 저렇게 안 할 듯이란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여기서 비밀번호를 적어내기 위해 예를 들면, 이나미가 당장 데드라인이 걸린 직장업무에 스마트폰 사용이 급하다든가 아니면 오준영이 그럴싸한 대사를 말하면서 이나미가 심리적으로 말려드는 설정이면 모르겠지만, 여기선 그냥 스마트폰이 놓여 있고 오준영은 별다른 액션도 없이 종이만 내밀뿐입니다. 적어도 제가 봤을 때 이 건물부터 기본적으로 위화감이 가득한 공간이라 나 같으면 핸드폰 들고 다른 데 가서 수리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쳐 가기도 했습니다.
최대한 양보해서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나미 이전 피해자들이 이런 식으로 오준영의 사설 수리점을 거쳐 비밀번호를 적어내고 휘말렸다는 장면까지 보면 보편적인 범행 수법으로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설정으로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 장면은 극의 전개를 위해서 납득하고 일단 넘어가면 중반부까지는 빠르게 치고 나가며 주인공의 일상이 무너지는 장면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며 몰입감을 형성하기도 해서 앞서 지적한 비밀번호 장면은 그냥 사소한 결점으로 인식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중간에 카페 장면까지 보고는 피해자에 대한 맥이 풀렸습니다.
디지털 보안관으로 위장한 오준영
스파이웨어를 통해 핸드폰이 원격 조종을 당한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이나미를 밖으로 불러내 스파이웨어를 다운받은 흔적이 없는데 같이 사는 누군가의 소행인 것 같다는 말을 전달합니다. 그러고 난 후 카페에 들어온 이나미가 은주에게 "혹시 네가 그런 거냐."며 그날 밤 핸드폰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이게 상황이 그렇다"라는 말로 의심합니다.
물론 혼란을 겪는 캐릭터가 친구까지 의심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나미에게 있어 오준영은 몇 번 우연히 마주친 사이고, 영화는 내내 은주와의 친분을 보여줬으며, 오준영을 의심하고 조심하라는 아빠에게 화를 낸 장면도 있기 때문에 이나미가 오준영은 의심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는 의심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좀 더 디테일한 묘사가 있었어야 했다고 봤지만 여기서는 오준영의 몇 마디에 "정말요."라는 식으로 배우 연기에만 의존하는 듯한 인상 있었고, 그것만으로 한계가 느껴 졌습니다. 피해자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그런데도, 범인에게 말려들었다는 방식을 보여줘야 피해자에 대해 안타까움과 범인에 대한 소름 끼침이 양립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결정적인 두 장면에서 인과관계를 좀 허술하게 하고 주인공이 힘없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줘서 피해자에 대해서는 답답함이, 범인에 대해선 입체적이기보단 그냥 처음에 보여준 모습을 끝까지 똑같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평면적인 느낌만 남아 장르적으로 좀 아쉬웠습니다.
여기까지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써 보았습니다. 넷플릭스 화제작으로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수작이 될 수 있었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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