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라는 상품 자체가 생소하던 1960년과 70년대 철저하게 우량주 중심의 가치 투자를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이룩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 중 한 곳인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주식 스승으로도 알려진 국내 증권가의 신화, 명동 백 할머니 백희엽 여사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백희엽 여사
1916년 평양 대지주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백희엽 여사는 6.25 전쟁이 터지자 많은 재산을 북한에 남겨둔 채 말 그대로 맨몸으로 남한으로 넘어옵니다. 부산까지 내려온 백 할머니는 양말 장사를 통해 돈을 벌기 시작하다가 친척의 권유로 일본제 페니실린과 마이신을 매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본제 의약품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지자 원가의 10배 이상에 매집한 물량을 팔아 종잣돈을 모읍니다. 이후 그녀는 대구로 건너가 군수품 장사를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시민들이 입을 만한 옷이 부족했고, 백 할머니는 군인들의 옷들을 저렴하게 구한 후 검은색 혹은 회색으로 염색하여 팔아 20배가 넘는 차익을 거둡니다.
백 할머니의 주식 투자
참고로 백 할머니의 사촌 동생이 6.25의 전쟁 영웅이자 친일파로도 잘 알려진 백선엽 씨였던 점을 생각하면 군인들의 옷을 떼올 수 있던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5억 환, 현재가치로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모은 그녀는 서울로 올라온 후 건국채권이 액면가의 20% 수준인 헐값에 거래될 때 이를 꾸준히 사들인 뒤 만기 상환을 받아 엄청난 돈을 벌게 됩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 그녀는 주식 투자를 시작합니다. 1950에서 60년대에 우리나라에 상장된 주식은 기껏해야 20개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 중에서도 건설주를 집중적으로 매집합니다. 그렇게 몇 년간 집중 투자를 한 결과 1970년대 초 국제유가가 폭등하는 오일쇼크가 벌어지고 중동에 건설 붐이 벌어지면서 1977년부터 2년여 동안 건설주가 급등합니다.
대한민국의 큰손
당시 일부 건설주는 500원이던 주가가 한 달 이상 상한가를 기록해 3만 원대까지 오를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백 할머니는 단숨에 증권가 아니 대한민국의 큰손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1970년대 당시 백 할머니가 굴리던 자금은 그때 가치로도 300에서 400억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한국의 시가총액이 1000억이 안 되던 시기였으니 한 명의 슈퍼 개미가 대한민국 전체 시가 총액의 30에서 40%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시가총액이 약 3000조이니 지금으로 따지면 1000조 가량의 어마어마한 자금을 굴리던 셈이죠. 얼핏 보면 건설주 한방으로 대박이 난 투자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백 할머니의 투자 방법은 가치투자 자체였습니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스승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한눈에 기업의 전반적인 상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기업 관련된 정보를 해석하는 데 뛰어났습니다. 또한 한 번 투자하면 짧게는 2년에서 3년, 길게는 수십 년까지 저평가된 우량주를 장기 보유했죠. 국제 정세를 읽기 위해 매일 타임스와 같은 영문 잡지를 읽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투자 업계의 슈퍼스타인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 역시 젊은 시절 백 할머니를 스승으로 모시며 주식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박 회장이 대학원생이던 시절 명동에 백 할머니라는 큰손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다짜고짜 백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어찌어찌하여 백 할머니의 허락을 받은 박 회장은 그녀의 사무실로 출근하기도 하고 그녀가 증권사나 기업체를 방문할 때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돈에도 눈이 있다
박 회장에 따르면 그녀는 사회적 기여도가 높거나 수익성이 좋은 기업의 주식만 골라서 사들이고 2년이고 3년이고 기다리다가 주가가 오르고 매수자들이 나타나면 그제서야 차액 실현에 나섰습니다. 백 할머니의 이러한 투자법을 통해 박 회장은 우량주는 반드시 제 몫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도 합니다. 박현주 회장은 회고록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백 할머니는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정석 투자만을 했습니다. 당시에도 수백억 원을 보유한 그녀는 놀랍게도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단벌 코트 하나만 입고 다녔으며 그녀의 옷은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죠. 점심은 항상 저렴한 짜장면만 먹었으며 수입 물품이나 명품은 끔찍이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돈에도 눈이 있다. 돈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돈이 찾아온다.
백 할머니의 유산
증권가의 신화로 통했던 백 할머니는 1992년 중풍으로 쓰러진 뒤 병마와 싸우다 1995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남긴 수백억 대의 자산은 어떻게 됐을까요? 이 돈은 그녀의 아들인 박의송 씨가 물려받습니다. 박 씨는 삼보증권의 상무이사로 재직하다가 우풍상호신용금고를 만들어 회장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어머니 백 할머니의 도움으로 본인 지분 50%, 한화그룹 지분 50%를 통해 삼희투자금융이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삼희투자금융은 설립 이후 여러 차례 증자를 한 결과 한화그룹의 지분은 18.94%였던 반면, 박의송 씨의 지분은 6.4%까지 떨어져 2대 주주로 전락하죠.
삼희투자금융
점점 경영에서도 소외되던 박 씨는 2대 주주로서의 대우를 요구하고 보유 지분을 시가보다 3배에서 4배 높은 가격으로 사달라고 한화에 요청합니다. 그러나 한화가 이를 거부하자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다는 것을 이유로 1996년 지분 경쟁을 시작합니다. 박 씨는 우학그룹의 이학 회장과 함께 아무도 몰래 삼희투자금융 지분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어느덧 40%를 확보한 후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회사 내 한화 쪽 임원을 모두 해고하고 본인들의 사람을 채워 넣어 회사를 장악하려는 속셈이었죠. 한화 역시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들도 지분 확보를 위해 삼희투자금융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고, 이 소문이 퍼지면서 7000원대이던 주가는 순식간에 5만 원까지 상승합니다.
삼희투자금융 상장폐지
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것으로는 출혈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 한화는 하나의 꼼수를 찾아냅니다. 공모전환사채는 발행 후 3개월이 지나야 주식으로 바꿀 수 있지만, 사모전환사채는 그러한 규정이 없었죠. 이를 이용해 한화는 우호 세력에게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한 후 이를 곧바로 주식으로 바꾸게 하여 박 회장의 지분 희석 및 본인들의 지분율을 늘립니다. 결국 97년 2월 13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진 7명이 모두 한화그룹 인사들로 채워짐에 따라 둘 간의 피 튀기는 쩐의 전쟁은 한화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서로가 엄청난 자본을 퍼부으며 싸웠던 전쟁은 너무나 허무하게 이듬해인 1998년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터짐에 따라 98년 12월 삼희투자금융은 단돈 5원에 상장 폐지가 되죠. 결과적으로 둘 모두 엄청난 돈만 쓰고 패배한 것입니다.
성도이엔지 공매도 결제 불이행
당연히 둘 간에는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겠죠. 한화에서는 박의송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박 회장은 2000년 3월 29일 성도이엔지 주식 15만 주를 공매도하였습니다. 당시 성도이엔지의 상장 주식 수가 97만 주였으니 상장 주식 수에 무려 15.4%를 공매도한 거죠. 또한 상장 주식 중에서도 70% 이상을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유통되는 주식 대부분을 공매도한 것입니다.
당연히 박의송 씨에게 이를 갈고 있던 사람들이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죠. 그들이 성도이엔지 주식을 매수해 버림에 따라 주가는 한 달가량 상한가를 기록하게 됩니다. 공매도를 위해 빌렸던 주식을 다시 갚아야 하는 만기가 다가옴에 따라 박 회장은 주식을 다시 매수해야 했지만, 급등한 주식을 아무도 매도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결국 박 회장은 공매도한 15만 주 중에서 13만 주를 갚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결제 불이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고가 터지고 박 회장은 백 할머니가 힘들게 모은 돈 대부분을 날려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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