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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귀주대첩 이야기 소배압의 개경 직공 청야작전 강감찬의 활약

by 궤적76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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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알려드릴 것은 1018년에 다시 계획되는 고려 침공을 준비하던 거란군과 고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귀주대첩으로 알려진 고려 거란 전쟁의 훈장이자 감동적인 피날레로 장식할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는 고려와 거란 사이의 진짜 마지막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귀주대첩

야율융서의 협박 편지

야율융서
소배압

고려 정벌 실패로 실망한 야율융서는 전쟁에 앞서 고려 군사들에게 협박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협박 내용은, 항복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 군은 이 편지를 무시하고 결국 거란은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로써 백전노장인 소배압이 전체 지휘를 맡게 됩니다. 그때 소배압은 이미 70세에 근접한 나이입니다. 칠순 잔치는 전쟁이 끝나고 한다. 이 와중에 고려는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전 전투에서 고려를 구한 강감찬은 공로를 인정받아 정4품 예부시랑으로 지위를 얻고 강감찬은 이제 문인에서 무인이 되었습니다.

거란의 트라우마가 있는 흥화진

흥화진
수몰 당하는 거란 군

이에 더해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임명하여 전체 군을 지휘할 수 있는 사령관급의 엄청난 힘을 부여합니다. 강감찬은 거란의 침공을 맞은 흥화진으로 신속하게 이동합니다. 흥화진은 거란의 침공을 이전에 막아낸 곳으로, 이번에는 흥화진을 수호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거란을 완전히 괴멸시키기 위해 깜짝 공격을 계획합니다. 거란은 이전 전쟁과 마찬가지로 흥화진 동쪽에 진을 치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주변에 강감찬이 건설한 거대한 둑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긴 후에 확인해 보니 죽은 적군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소배압의 1만 군대는?

이들은 거란의 별동대였던 것입니다. 실제 소배압이 이끄는 군대는 다른 곳에 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거란의 병력은 흥화진을 완전히 피해 다른 경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전에 함락시키지 못한 흥화진의 기억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인데, 문제는 소배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누구도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일단 추격해 보자. 강감찬은 주력군들을 북부로 즉시 남하시키고, 강민첨에게도 전령을 보내 소배압을 쫓으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강민첨이 지휘하는 부대는 마탄에서 1만의 거란군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마탄에서 전투

강민첨
곽주와 압록강

이전 전투에서 지채문이 넓은 평지인 마탄에서 패배했으나, 돌아갈 곳은 없습니다. 불리해도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한다. 거란과의 전투에서 한참이 지난 후, 놀랍게도 거란군 1만여 명이 의식을 잃거나 부상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이는 강민첨의 부대가 대승 거둔 것입니다. 이전에 가족과 친구를 잃은 고려군들의 투지와 분노가 전투력으로 발휘되어 믿을 수 없이 강력해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것은 모두 미래의 성공을 위한 경험과 자양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탄에서 적군을 쓸어버렸지만, 아쉽게도 주력군은 아니었습니다. 주력군은 계속 남하하며 대동강까지 진군하고 있었죠.

소배압은 개경으로

소배압이 개경 직공을 선택한 이유는 과거에 보급로가 끊겨서 굶었던 경험과 흥화진에서 고전한 경험 등으로 인해 이번에는 빠르게 개경을 공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식량을 아끼고 투지를 불태우며 전쟁을 종료한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죠. 소배압은 승리를 확신하며 다짐하고 있지만, 강감찬은 이러한 상황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즉시 임종현에게 전령을 보내 개경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김종현과 그의 군사 1만여 명이 개경으로 출발했습니다. 동북면의 3천300명의 군사들에게도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가 빠르게 개경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감찬이 상원수가 된 이유입니다.

청야작전

강감찬 역할의 최수종 배우
고려와 거란 지도

지휘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여 정확하고 신속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1월 3일 개경 북쪽 40km 지점인 신은현에 도착한 거란군들이 고지에 다가갈 때, 소배압은 당황하여 "망했다, 먹을 게 없다"라고 외칩니다. 개경의 백성들은 청야작전으로 식량과 들판을 모두 불태웠고, 궁궐 안에서 결사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많은 고려군들이 추격해 오며, 식량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배압은 300명만 출격시키지만, 순식간에 몰살당하게 됩니다. 이에 현종은 개경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했기 때문에 최정예 호위 군사들 100명을 모두 출격시켜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퇴각하는 거란군을 쫒는 강감찬

상황판단을 한 소배압은 상대편의 군사수를 파악할 수 없고, 현재 상태로는 위험해져서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퇴각을 결정합니다. 한편, 바쁘게 개경으로 오고 있던 강감찬은 거란의 퇴각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강감찬은 회군 중인 거란을 추격하여 안수진과 원주에서 500여 명을 잡아, 가볍게 처치한 뒤 거란 본대를 찾게 됩니다. 압록강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강감찬은 고려의 모든 전력을 귀주에 집결시키게 됩니다. 마침내 귀주성 동쪽 들판에서 10만 거란군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고려군은 기록상 20만 8300명이지만, 훈련이 되지 않은 군사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사실상 거란과 비슷한 전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넓은 필지에서 거란에 맞서는 대규모 전투는 거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였습니다.

귀주대첩

김종현
전사한 거란 군사

강감찬과 소배압은 혈광을 띠고 진격 명령을 내립니다. 이는 그들의 전투가 시작되고 역사에 큰 기록을 남기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고려는 바람으로 인해 불리했습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거란의 화살은 정확하게 날아가지만, 고려의 화살은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람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오랜 전쟁에서 가족과 친구를 잃은 고려군들은 여전히 사기가 높았습니다. 싸움이 시작되고 막상막하며 백중세 하게 싸우고 있던 순간, 갑자기 깃발이 반대편을 향해 움직입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더불어 비구름도 몰려옵니다. 고려의 한 군사가 외칩니다. 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구름 사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김종현과 1만 명의 정예군은 마치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남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김종현의 극적인 등장

강감찬은 회심의 미소를 지은 후 웅장하게 외칩니다. 모두 총공격하라. 맹렬한 공격이 계속되면서 거란군들은 점점 위기에 처합니다. 그들은 수평 저울 한쪽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이 점점 멸망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런데 전투 중 김종현의 극적인 등장은 마치 물 한 방울이었습니다. 이제는 고려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지만,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방이 필요합니다. 이제 시작해야 합니다. 고려군들은 신속하게 이동합니다. 거란군들을 삼면에서 포위합니다.

 

그들에게 파상공세를 가하며 맹렬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서서히 기울던 무게추가 이제는 완전히 고려 쪽으로 기울어져서 거란의 진영은 완전히 붕괴됩니다. 도망치려는 거란 군사들이 한 명, 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모두 앞다퉈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혼돈과 혼란의 상황, 소배압의 명령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소배압도 도망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습니다.

도망친 소배압

현종
양규 장군

거란군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고, 뒤를 쫓아가며 끈질기게 적을 처치하는 고려군 앞에 작전상 후퇴와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도망치는 적군의 뒤를 쫓아가면서 적을 전멸시키는 것은 수순입니다. 따라서, 고려군은 악착같이 거란의 뒤를 쫓아가며 결국에는 거의 10만의 거란군을 죽이거나 사로잡습니다. 도망친 인원은 몇천 명으로 고려가 이전 세월을 완전히 설욕하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고려군의 피해는 전사한 173명이 다였습니다. 소배압의 도망에 대해 야율융서는 격노하며 "전쟁을 망치게 했느냐! 당장 네 낯가죽을 벗긴 후 참형에 처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후 소배압에 대한 소식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대패하고 도망쳤으므로 살았어도 인생은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30년간 이어진 고려와 거란의 전쟁

이후 거란의 몰락으로 인해 야율융서도 죽은 것이며, 나라가 망하고 다 망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현종은 강감찬의 손을 붙잡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려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강감찬과 다른 군사들에게 포상과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이로써 강감찬은 역사적인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어내며 30년간 지속된 고려와 거란의 불안한 관계가 종결되어 고려의 전성기가 도래했습니다. 이런 드라마 같은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야기는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됩니다. 야율융서는 망하고, 강감찬은 영웅으로 떠오르는 귀주대첩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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