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5만 원권 지폐 속 인물이 신사임당이란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우리나라 최고액 화폐의 인물로 다른 위인을 모두 제치고 신사임당이 선택된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원래 5만 원권의 주인공이 유관순 열사가 될 뻔했던 사실, 5만 원권과 함께 10만 원권도 발행하려 했던 이야기까지 우리나라 화폐 속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화폐와 인물
돈이란? 물건을 효율적으로 구매하고 판매하기 위해 사회가 약속해 숫자로 정량화한 가치이며 화폐는 그 가치를 인쇄해서 물리적으로 표현한 증서입니다. 우리가 돈이 있다고 하는 건 화폐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고 화폐의 단위는 국가가 결정하고 발행하고 관리합니다. 화폐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적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 모델로 선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품과 업적이 갖춰진 인물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동전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에서 화폐 인물 선정을 담당하고 있는데, 분야의 전문가를 소집한 후 '화폐 도안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지폐에 들어갈 후보자를 선정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화폐는 어떤 단위로 나뉘어 있고 각각 어떤 디자인이 들어있을까요? 우선 동전으로는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짜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폐로는 1000원, 5000원, 만 원, 5만 원이 있죠. 그렇다면 이 각각의 단위에 어떤 디자인이 들어가 있을까요? 앞서 보통은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인물을 넣는 게 보편적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했을까요? 기본 단위인 1원에는 무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화이고 애국의 상징이니 잘 넣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원짜리에는 거북선, 10원짜리에는 다보탑, 50원짜리에는 벼 이삭, 100원짜리에는 이순신, 500원짜리에는 학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링컨, 제퍼슨, 루스벨트, 워싱턴, 케네디 등 대부분 역대 대통령을 그려 넣은 것과 상당히 대조됩니다. 물론 꼭 인물로 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충분히 사물로 넣을 수도 있고 각각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들이니 비판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또 지금은 동전을 워낙 안 쓰기 때문에 그 논란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다만 동전을 잘 안 쓰기에 이순신 장군을 고액 지폐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과 아무리 안 쓰는 동전이라 해도 학이 웬 말이냐? 다보탑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폐
동전과 다르게 지폐는 모두 인물이 그려져 있고 또 동전보다 훨씬 자주 사용하는 단위이기 때문에 각각의 인물에 대한 비판과 의견 대립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000원권에는 퇴계 이황, 5000원권에는 율곡 이이, 만 원권에는 세종대왕, 5만 원권에는 신사임당을 각각 전면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 중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황, 이이,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우선 세 사람 모두 나라를 위해 크게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그냥 좋은 집에서 사교육 받고 자란 똑똑한 사람, 성공한 대학 교수 정도라고 할까요? 후대에 전할 만한 가치나 국가적인 상징성도 없습니다. 신사임당의 선정은 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인물이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선정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오로지 여성을 선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왜곡된 여성상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신사임당은 국내 화폐 역사상 사실상 첫 여성 인물입니다. 한국은행은 5만 원권에 신사임당을 선정한 이유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 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이유로 화폐 인물이 된 것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많이 뒤처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여성이 어떤 인간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귀감을 주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했었습니다.
신사임당 선정 논란
한국여성단체연합도 한은의 신사임당 선정 이유는 시대 상황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으며 원래 여성계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고액권 인물로 신사임당 대신 유관순을 선정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또한 인터넷에는 신사임당이 이룬 업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식 사교육 잘 시켜 명문대 보낸 게 무슨 업적이냐라는 등의 비판이 많았습니다. 인물의 가치에 대한 논란과 더불어 조선에 편중된 시대적 불평등 또한 논란이 되는데 세 인물 모두 조선 특히나 조선 중기의 동시대 사람들입니다. 퇴계 이황은 1501년부터 1570년까지 살았으니 태어날 땐 연산군이 왕이었고 중종, 인종, 명종을 거쳐 선조 즉위 직후에 사망했습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전기 후기로 나누니 정확히 조선 중기를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이와 신사임당도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지폐가 네 종류인데 그중 세 명이 동시대 사람인 겁니다. 신사임당은 1504년부터 1551년까지 살았고 그의 아들인 이이는 1536년부터 1584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일까? 임진왜란 직전이었고 이순신 장군을 제외한 임진왜란의 전황을 돌아보면 그게 아니었다는 답이 금방 나옵니다.
후보로 거론된 인물
그렇다면 화폐 속 인물을 바꾼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인물이 적당할까요? 2009년 당시에 5만 원권과 10만 원권 두 종류를 발행하기로 했었는데 이때 어떤 인물들이 후보군에 있었는지를 보면 여론을 알 수 있습니다. 5만 원권의 신사임당과 최대 라이벌은 앞서 언급한 대로 유관순이었습니다. 사실 얼마짜리 지폐냐의 차이일 뿐 여성 인물 선정으로 보면 진보 보수 남녀 구분 없이 거의 이견 없이 유관순을 선호하는데 신사임당이 선정된 이유는 지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을 닮았느니, 유경수 여사를 닮았느니 하는 음모론까지 나왔을까요? 10만 원권 후보는 백범 김구, 광개토대왕, 안창호, 장영실, 안중근, 정약용 등이었습니다. 현재 조선 성리학에 편중된 인물에 비하면 시대적으로도 더 넓고 인물의 상징성과 가치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만한 후보군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과정으로 만약 안중근이 채택되었더라면 일본 천 엔권에 대해 완벽한 맞불 작전이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1984년까지 일본 천 엔권의 인물이 안중근이 암살한 이토 히로부미였으니까요. 최근 들어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도마 안중근, 유관순 열사 등등 독립운동가 중에서 화폐 인물을 뽑자는 여론이 많이 일고 있습니다. 또한 광개토대왕처럼 조선을 벗어난 인물, 한 국가의 창업 군주 등 진취적인 인물을 뽑자는 의견도 많이 나옵니다. 아마 5000년 역사 중 500년에 불과한 조선에 편중된 점에 대한 불만과 그중에서도 조선을 망친 성리학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진취적인 기상, 독립운동가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국민들의 바람대로 화폐의 인물이 바뀌면 어떨까요?
10만 원권 발행
화폐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추가로 고액 화폐 발행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2009년 당시 10만 원권의 발행 직전까지 논의됐다가 연기가 됐고 지금도 10만 원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10만 원권을 새로 발행해서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넣는 것보단 기존의 화폐 단위에서 새로운 인물로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지금은 실물화폐에서 디지털화폐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로 97% 이상이 전산으로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액권의 신규 화폐는 탈세와 불법 거래에 악용될 뿐 실질적인 경제활동에 이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작은 단위 화폐 이를테면 1000원 단위 이하만 실물 화폐가 필요하고 그 이상의 단위는 카드나 계좌 등 전산으로만 이용해도 충분합니다. 2009년 당시 5만 원권만 발행되고 10만 원권이 취소, 연기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컸습니다. 실례로 5만 원권의 환수율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5만 원권 지폐의 환수율이 17%대까지 떨어졌는데 10장 중 8장 이상이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100달러 지폐의 환수율 70%대와 유럽 500유로 지폐의 90%대와 비교하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겁니다. 당연히 한은에 환수되지 않은 5만 원권은 금고나 장롱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5만 원권에 대한 수요 증가 현상을 반영하듯 금고 판매도 해마다 크게 늘고 있으며 5만 원 건으로 15억 원 정도를 보관할 수 있는 금고가 특히 인기라고 하는데 이는 5만 원권이 정상적인 거래와 소비활동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고 자산의 불법 축적에 사용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10만 원권을 추가 발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졌고 화폐 단위가 실물 경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언뜻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유흥, 도박, 탈세, 불법 거래 등을 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미 5만 원권도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현금 거래가 어려워지게 일만 원 이상 현금을 없애고 카드와 계좌 거래로 양성화한다면, 음성적 거래가 줄어들고 세수가 확보되어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화폐 속 인물과 고액권 발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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