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2016년 미셸 오바마가 연설해서 꺼낸 말입니다. 반대 측은 그녀를 'Angry black woman' 성난 흑인 여자라고 비하했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고, 흑인이기에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여자라고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하지만 그녀가 남편과 함께 백악관에서 나올 때 미셸은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퍼스트레이디로 기록되었습니다. 퇴임 이틀 전 실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호감도는 58%였습니다. 클린턴의 57%, 부시의 40%와 비교하면 꽤 좋은 수치이죠. 미셸 오바마는 이런 남편의 기록을 능가했습니다. 68%의 호감도를 얻으며 그녀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오늘은 미국에서 가장 사랑을 받았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이면서 힘없는 소외계층을 지키는 사회운동가였습니다. 수동적인 역할을 했던 다른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선거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약자를 위한 정책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적인 연설가이면서 부드러운 포옹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을 통해 그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수많은 사람의 롤모델이 되었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패배감을 이긴 배움
흑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가 마주친 첫 번째 어려움은 가난의 따른 패배감이었습니다. 그녀가 살던 시카고의 사우스쇼어가 점차 슬럼가가 되어 가면서 동네 곳곳에 패배감이 드리워졌습니다. 그녀는 패배감이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느껴지는 감정이라 말합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은 패배할까 봐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두려움에 나약해집니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교외로 이사하였으며, 나머지 동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거라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미셸의 부모님은 패배감에 젖지 않았습니다. 미셸과 그녀의 부모님이 선택한 것은 배움이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했지만, 자신은 다발성 신경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미셸의 부모님은 교육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셸 자신도 배움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특목고와 유사한 휘트니 영 고등학교에 합격하여 매일 왕복 세 시간을 버스를 타고 통학했습니다. 학년이 오를수록 성적도 올랐습니다. 작은 성취를 하나 더 이룰 때마다 그녀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학년이 되어 프린스턴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한 그녀에게 진학 교사는 "네가 프린스턴에 갈 제목인지 잘 모르겠구나"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이에 미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패배감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엄습한다. 상담사는 바로 그런 기분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내가 시도도 해보기 전에 보나 마나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눈을 낮추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평생 내게 당부해 온 말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말을 믿었다면, 그 한마디로 내 자신감은 도로 거꾸러졌을 것이다. 나는 부족해, 부족해하는 자책이 다시 귓전에 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상이라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의 의견이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를 무너뜨리도록 놓아두진 않을 터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선생님을 찾아가 추천서를 받았으며, 지원 에세이에 자신의 삶과 목표를 진솔하게 적었습니다.
성난 흑인 여자
몇 달 뒤, 합격 허가서가 우편으로 날아왔습니다. 프린스턴을 졸업한 미셸은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법률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턴으로 잠시 들어온 버락 오바마를 만난 것도 그때이죠. 법보다 사람과 만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로펌에서 나와 비영리단체에서 일했으며, 이후 시카고대학병원의 부원장으로 일했습니다. 한편, 남편이 된 버락 오바마는 주의원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이 됩니다. 그리고 2007년,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미셸은 인생의 또 다른 어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남성이 키 크고 확신의 차 연설을 하며 무대를 휘어잡으면 사람들은 카리스마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셸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연설하자 반대 측은 그녀가 부드럽지 못하다고, 성이 났다고 비난했습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엘리트가 된 그녀에게 사람들은 남자를 쥐고 흔드는 여자, 잔소리하는 여자라 비하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비난에도 저급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강인함 안에 있는 부드러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셸은 수만 명이 보는 연설에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가정집이나 재향 병원에서는 사람들을 안아주며 따뜻함을 보여주었습니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미셸 오바마는 이후 8년간 아이의 건강, 소수 계층의 인권, 재향 군인의 복지에 힘썼습니다. 그리곤 백악관에 처음 들어갈 때 여론 호감도를 유지하며 품위 있게 퇴임했죠. '비커밍'에서 미셸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살면서 운 좋게도 온갖 부류의 비범한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국가원수, 음악가, 우주인, 운동선수, 기업가, 작가, 의사... 그들에게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대형 경기장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비판자와 회의론자가 따라붙었다. 그런 소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 소음을 견디는 법을, 소음 대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목표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마무리
여러분에게도 패배감을 심어주려는 사람, 저급하게 여러분을 평가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우리는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합시다. 지금까지 미셸 오바마의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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