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고려거란전쟁에서 드디어 김훈과 최질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반란을 일으킨 김훈과 최질을 제거한 왕가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자림 이가도 왕가도
고려사 왕가도열전에 따르면 그의 본래 이름은 이자림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 출신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이자림이지만, 중간에 이가도로 개명한 뒤 마지막엔 왕씨 성을 하사 받아 왕가도란 이름을 쓰기 때문에 이번 글에선 편의상 왕가도로 지칭 하겠습니다. 아무튼 왕가도가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때는 고려의 6대 왕인 성종 재위 시기인데요. 왕가도는 995년 7월,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서경 장서기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장서기는 7품의 지방 관직이며, 주로 문장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가도열전
왕가도는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다가 8대 왕인 현종의 재위 시기인 1014년 말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요. 1014년 11월,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현종의 허락을 받아 고려의 중앙군인 경군의 영업전을 빼앗은 뒤, 문신 관료들의 녹봉으로 충당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상장군 김훈과 최질 등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한편, 왕가도는 동북면의 화주방어사로 있다가 임기가 끝나면서 마침 개경에 돌아와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정권을 잡은 무신들에 의해 정치가 중구난방이 되어 조정의 기강이 문란해지자 이에 격분한 그는 어느 날, 몰래 김맹이란 자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상께서 어찌해 한나라 고조가 운몽을 순유 한다고 하고서 한신을 체포했던 일을 본받지 않는가" 그의 말을 간단히 풀이하자면 김훈과 최질이 장악하고 있는 개경에서 그들을 처리하긴 어려우니 다른 곳으로 그들을 유인하여 죽여버리란 겁니다.
그러자 뜻을 알아챈 김맹은 이 말을 은밀히 현종에게 보고하였고 이에 현종은 왕가도를 급히 권서경유수판관으로 임명한 뒤 먼저 가서 모든 준비를 해놓도록 명하였죠. 기록에 따르면 왕가도가 서경 장서기로 있었을 당시 서경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즉, 현종은 서경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던 왕가도를 통해 서경에서 김훈과 최질을 제거하고자 한 겁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015년 3월이 되자, 현종과 왕가도는 드디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사 왕가도열전에 따르면, 이때 현종은 서경에 행차한 뒤 서경의 장락궁에서 김훈과 최질을 포함한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김훈과 최질의 죽음
그리고 잔치 도중에 김훈과 최질이 거하게 취하자 바로 그 순간 왕가도가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군사들을 동원하여 김훈과 최질 등 18명의 무신들을 죽여버렸죠. 또한 이때 최구라는 문신도 죽임을 당했는데, 이유는 병부낭중 직에 있으며 현종을 호종했으나, 성품이 거칠고 천박해 최질과 교유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김훈과 최질이 왕가도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무신들의 천하는 고작 반년도 안 돼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큰 콩을 세운 왕가도는 이후 1021년엔 상서우승을, 다음 해인 1022년에는 동지중추사를 거쳐 1023년에 호부상서로 임명되는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게 되죠. 그리고 같은 해에 치성공신의 칭호를 받았다고 하며, 1027년에는 고려의 최고 정무기관인 중서문하성의 서열 3위인 참지정사에 임명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고속 승진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겁니다.
원질귀비 왕씨
게다가 그는 자신의 딸을 현종에게 시집보내면서 현종의 장인이 되게 되는데요. 그의 딸인 원질귀비 왕씨가 정확히 언제 현종의 부인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왕가도는 상서좌복야 이응보와 어사대부 황보유의, 상서좌승 황주량 등과 함께 개경의 나성 축조를 감독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나성 축조는 강감찬의 건의로 시작되었으며, 이 공사를 위해 장정 23만 8938명과 기술자 8450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요. 즉, 수많은 인력과 물자가 투입된 엄청난 규모의 토목공사였던 것이죠. 그리고 1029년 8월에 드디어 완공되면서 왕가도는 나성 축조를 성공적으로 마친 공을 인정받아 겸교태위 겸 행이부상서 겸 태자소사 겸 참지정사 겸 상주국 겸 개성현개국백으로 승진하였으며, 식읍 7000호를 받았습니다.
경목현비 왕씨
또한 수충창궐공신의 칭호를 올려 받음과 동시에 왕씨 성과 개성현의 토지를 하사 받았다고 합니다. 왕가도는 이후 현종이 사망하고 9대 왕인 덕종이 즉위하자 현종에 이어 덕종의 장인까지 되게 되는데요. 그는 덕종의 즉위년인 1031년 8월, 덕종에게 왕비를 맞이하도록 청하였으며, 그해 10월에 자신의 딸을 덕종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때 덕종의 부인이 된 왕가도의 딸이 덕종의 제2비인 경목현비 왕씨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왕가도는 문하시랑 동내사문화평장사로 승진하게 되죠. 왕가도는 이후, 고려 조정 내에서 대단한 강경파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덕종은 1031년 10월 공부낭중 유교와 낭중 김행공을 요나라에 보내 성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하는 한편, 요나라의 새로운 황제가 된 흥종의 즉위를 축하하게 하려고 했는데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왕가도가 덕종에게 이렇게 건의했습니다.
강경파로 활동
"거란이 우리나라와 서로 화호를 통하고 예물을 주고받지만, 그들은 우리나라를 병탄할 뜻이 있습니다. 지금 임금이 죽고 부마 필제가 배반하여 동경을 점거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시기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압록강의 성교를 헐어버리고, 붙잡혀 있는 우리의 사신을 돌려보내도록 청하되 만약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그들과 국교를 단절해야 할 것입니다." 요나라는 1014년 6월 군사를 보내 압록강의 부교를 만들어 강을 건너게 한 뒤 지금의 평원북도 의주에 보주성을 축성하여 고려 침략의 전진기지로 활용한 바 있었는데요. 즉, 요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난 것을 기회 삼아, 요나라 측에게 압록강의 부교와 보주성을 철거하고 억류 중인 고려 사신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요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자는 것이죠. 이에 덕종은 왕가도의 건의를 받아들여, 표문에 해당 내용을 적은 뒤 요나라 측에 전달토록 했습니다.
하지만 요나라 측은 이러한 고려 측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이에 덕종은 신하들을 불러 후속 대책을 논의했는데, 이때 서눌 등 29명의 신하들이 왕가도의 의견에 동조하여 덕종에게 이렇게 건의했죠. "저들이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였으니 우호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번에는 황보유의 등 39명의 신하들이 이렇게 말하며 요나라와의 국교 단절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우호관계를 끊는다면 반드시 재난을 끼칠 것이니 우호관계를 지속하면서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자 덕종은 두 의견을 절충하여 사신 파견을 중단하는 한편, 요나라의 연호인 태평은 계속 사용하는 것으로 해서 이번 일을 마무리하게 되죠. 그런데 요나라에 대한 왕가도의 강경한 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어서 중서령으로 추증
기록에 따르면 얼마 뒤, 평장사 유소가 거란의 성을 쳐부수자고 건의하자 덕종은 다시 재상들에게 그 안을 검토하게 하였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거란의 성은 요나라의 보주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유소의 이러한 주장에 서눌과 황보유의, 황주량, 최제안, 최충, 김충찬 등은 모두 출병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가도는 이단이란 인물과 함께,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하며 강경하게 출병을 청하였다고 하죠. 하지만 덕종은 관청에 명을 내려, 태묘에서 점을 쳐보게 한 뒤 결국 출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점괴가 좋지 않게 나왔었나 봅니다. 아무튼 왕가도는 이에 실망하였는지 얼마 뒤, 사직을 요청한 후, 자신의 고향인 청주로 돌아갔으며, 1034년에 결국 눈을 감게 되는데요. 이에 덕종은 왕가도의 장례 비용을 지원해 주었으며, 그에게 영숙이란 시호를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왕가도는 최고의 명예직인 중서령으로 추증된 뒤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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