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폭탄 테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악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목숨을 건 땅따먹기를 왜 끝내지 못하는 걸까요? 지금부터 세계 3대 종교가 추앙하는 성스러운 땅 예루살렘을 품은 이스라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유대인의 가나안 지역 정착
현재 이스라엘 지역의 고대 명칭은 가나안이었습니다. 약 4000년 전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형성합니다. 참고로 아브라함은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입니다. 어쨌든 가나안 지역에 엄청난 기근이 닥치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이집트 나일강 하류로 이주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노예로 전락한 유대인들이 400년간 강제 노동에 시달렸고 결국 모세가 민족을 해방시켜 이집트에서 탈출합니다. 40년간 광야에서 방랑하는 동안 그들은 진정한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십계명을 포함한 토라를 받게 되는데요. 토라는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으로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문서입니다.
솔로몬 왕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
그 후 이 세기 동안 유대 민족은 이스라엘 땅 대부분을 정복합니다. 기원전 약 1020년경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은 그들을 괴롭히던 민족 블레셋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에 나섰고 사울의 후계자인 다윗왕은 팔레스타인을 제패하면서 이스라엘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12개 지파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하고 수도 예루살렘과 군주제가 국민들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합니다. 기원전 965년경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그의 아들 솔로몬은 여러 업적을 남기는데요. 업적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것은 기원전 957년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겐 유대교의 원천이고 훗날 기독교도에겐 예수가 부활한 성지가 되며 더 훗날엔 무함마드가 승천해 신을 만나는 성지가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적으로 무척이나 민감한 지역이 되죠. 어쨌든 예루살렘에 제일 먼저 성전을 세운 건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기원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 왕이 죽자 나라는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갈라집니다.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은 이스라엘 왕국은 200년 이상 지속됐고 예루살렘 중심의 유다 왕국은 400년간 통치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함락되고 백여 년 후인 기원전 586년에는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대부분의 거주민을 내쫓아 버립니다. 바빌로니아 왕국은 유다 왕국의 백성들을 본국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만들었는데, 사실상 유대인은 이때부터 유다 사람들이라는 뜻의 유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기원전 538년경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정책으로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으로 1차 귀환에 나서는데요. 이들을 이끈 사람은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율법 학자인 에스라의 주도로 유대인의 2차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이후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제2 성전을 건축하면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스라엘 정복
기원전 332년경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야망가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는데요.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반도의 도시 국가로 구성된 헬라 지역을 통일했고 이스라엘 땅 역시 알렉산더가 정복한 고대 세계의 일부로 편입되는데요. 이로써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유대민족은 헬라 문화나 관습을 흡수하기 싫어했고 더욱이 유대교 행사 금지령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166년경 화가 난 유대인들이 혁명을 일으키는데요. 유대인들이 스스로 세운 하스몬 왕조의 주도하에 승리를 이어가자 셀레우코스는 결국 유대의 자치권을 되돌려줍니다. 기원전 129년 셀레우코스 왕국이 몰락하면서 유대인들은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그 후 유대인들은 약 80년 동안 하스몬 왕조의 통치하에서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리기도 합니다.
로마 제국과 헤롯의 지배
하지만 기원전 63년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에 잡아먹히는데요. 하스몬 왕인 히르카누스 2세에게는 로마의 지배하에 제한적인 왕권만 주어졌고 새로운 정권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수많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결국 로마군에 패배하면서 하스몬 왕조가 끝나고 이 땅은 로마 제국의 한 주에 속하게 됩니다. 기원전 37년 로마인들이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했고 내정에 대해 거의 제한이 없는 자치권을 주면서 이제 헤롯은 로마 제국 동부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중 하나가 됩니다. 헤롯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열렬한 숭배자였기 때문에 대규모 건축 사업에 착수해서 마사다의 요새 등을 세우게 됩니다. 또한 그는 성전을 시대의 가장 웅장한 건축물로 증축합니다. 헤롯은 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유대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사망했고 그 후 유대는 로마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습니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만의 생활양식에 대해 로마의 탄압이 심해지자 분노한 유대인들이 점차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는데요. 전투력에서 우세한 로마군이 결국 승리하면서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제2 성전이 무너져 버립니다. 예루살렘 함락은 커다란 결과를 초래했는데요. 이때부터 기독교는 유대교와 서서히 갈라지게 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제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진 채로 유대 문화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디아스포라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약 2000년 동안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요. 나라를 상실한 유대인들은 2000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돌며 온갖 차별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 와중에도 유대 민족과 유대교의 정신은 그들의 종교법인 할라카에 의해 하나로 결속됩니다.
아랍 왕조의 지배
이후 4세기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비잔틴 제국이 세워지면서 기독교 중심 국가가 세워집니다. 더 시간이 흘러 636년 무하마드가 사망한 지 4년이 흐른 후 아랍이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는데요. 아랍 왕조의 지배는 4세기가 넘게 이어졌고 다양한 칼리프들이 이 지역을 통치합니다. 그 사이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버금가는 이슬람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비 이슬람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해지면서 아예 고국을 떠나는 유대인들이 더 늘어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 동안 예루살렘은 긴 시간 이슬람의 땅으로 무슬림에게 추앙받게 됩니다.
십자군 원정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200년의 기간에는 십자군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도 하는데요. 로마의 교황이 예수가 부활한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의 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에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제1차 십자군이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곳에 살던 비기독교인들 대부분을 학살해 버립니다. 유대인들은 방어에 실패하여 불에 타 죽거나 노예로 팔려 갑니다. 이후 13세기까지 이어진 십자군 원정은 결국 이슬람군에 최종적으로 패하면서 실패로 끝났으나 이 원정으로 유럽에서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열렸고 성지순례가 일반화되었으며 많은 유대인들은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1291년부터 이스라엘은 다시 이슬람교도, 즉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요. 무슬림 노예 군대인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이 세운 교회를 파괴하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세우며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켜 갑니다. 1517년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시작되는데요. 오스만 제국 역시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상 성지 예루살렘을 가장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종교는 이슬람교인 셈입니다.
유대인의 민족 해방 운동 시온주의
19세기에 들어서자 중세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고 서양 열강에 의해 이스라엘 땅은 세 대륙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이 됩니다. 1870년대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 인구 과반수가 유대인으로 채워질 만큼 유대인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히브리어도 부활합니다. 시온주의 운동이 시작될 발판이 마련된 것입니다. 시온주의란 유대인들의 민족 해방 운동을 가리키는 용어인데요. 예부터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과 동의어로 사용된 시온에서 딴 이름입니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소수민족으로서 늘 공동체의 주변에만 머물러 있었고, 너무도 쉽게 집단 증오의 희생양이 되곤 했습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을 땐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집어넣었다는 소문으로 희생당하는가? 하면 십자군 전쟁에서는 유대인 학살이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종교, 문화, 경제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중세 유럽에 반유대주의 정서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을 경멸했으며 유대인들은 사회적 차별에 환멸을 느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땅을 향한 유대인들의 애착은 유대민족이 조상의 땅을 되찾는다는 시온주의 사상으로 이어집니다.
이후의 분쟁과 전쟁에 관련된 내용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공무원 시험 종류와 호칭 (1) | 2023.10.22 |
---|---|
단속 카메라 종류와 원리를 알고 벌금 내지 마세요. (0) | 2023.10.22 |
2023년 대한민국 부자 TOP 11 / 1위는 누구? (1) | 2023.10.16 |
전쟁의 역사 중동전쟁 1~4차 정리 중동 지역 판세 변화 (6) | 2023.10.14 |
집에 쓰지 않는 의료기기 중고 거래 절대 불가!!!! (0) | 2023.10.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