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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중동 전쟁의 이유 팔레스타인은 민족이 아니라 지명

by 궤적76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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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왜 싸우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다음 판단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국제적인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지역의 역사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굵직한 사건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no war

팔레스타인의 유래

많은 분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뺏고 이 지역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 잘못된 사실입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아요. 지명 이름이 팔레스타인입니다. 이 지역에 과거 유대인이 왕국을 이루고 살았었어요. 그러다가 기원전 63년 로마의 지배를 받아서 한 주로 편입이 됩니다. 과거 왕국일 때 블레셋 지역 사람들을 팔레스티나족이라 불렀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이 지역 이름이 팔레스타인이 되는 건데 이게 로마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면서 헤롯왕이 통치를 했었는데, 헤롯왕이 죽고 나서 여기 이스라엘 땅을 로마가 직접 지배를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이 반란을 여러 번 일으켜요. 로마가 여기를 평정해 버리죠.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블레셋족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인이라고 지명의 이름을 만들게 되는 겁니다.

이슬람과 유대교 종교 갈등

블리셋 지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민족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고 있는 아랍 사람들,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지금의 분쟁은 종교입니다. 유대교를 따르는 유대인들 그리고 이슬람교를 따르는 아랍 사람들 간의 다툼이 이 지역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다툼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고요.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고요. 7세기경에는 이슬람이 지배합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십자군 전쟁으로 쳐들어와요. 잠시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는데요. 이때 로마 때문에 유럽 각지로 쫓겨났었던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와서 살게 된 겁니다. 14세기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팔레스타인 지역과 시리아 지역까지 지배해요. 그리고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는데요. 오스만 제국은 유대인의 핍박을 줄여줘요. 유대인 이주가 더 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20세기부터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더 많이 이주를 해와요. 1500년대 유대인은 5000명 정도였는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추산해 보니까 8만 5000명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게 됐습니다.

유대인들의 자금력과 영향력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되고, 영국이 승전국이 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되죠. 지금으로 치면 홍콩 같은 개념이 될 거예요. 승전국이 패전국으로부터 지역 하나를 할양받는 거죠. 1917년 영국이 벨푸어 선언을 하는데요.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가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을 위한 민족 국가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발표한 선언이에요. 그러면 생각을 해봐야죠. 영국은 왜 유대인을 위해서 이런 선언을 했는가? 영국에게 돈이 되니까 그런 선언을 한 겁니다. 유대인들이 당시에 터전을 잃고 유럽 각지로 흩어져서 살았어요.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되겠죠. 그때 했던 사업이 고리대금이었어요. 유럽 각국으로 퍼져서 유대인들이 고리대업을 하면서 돈을 불려 나갑니다.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복리로 돈이 불어나게 되면 스노볼 효과가 나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대인들이 유럽의 자본을 장악하게 됩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베니스의 상인'이 그런 거예요. 악덕 업자 샤일록이 유대인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샤일록이 골탕 먹는 장면에 나머지 사람들이 통쾌하게 느낍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유럽 각 지역에서 미움을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의 자본력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유럽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키우게 되는데 이들이 이동하는 국가마다 강대국이 바뀌어요.

벨푸어 선언의 내막

벨푸어와 선언문
맥마흔과 샤리프

네덜란드로 가서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고 동인도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자본적으로 키워줍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가 초기에는 강대국이었죠. 그리고 이들이 다시 어디로 이동하냐면 영국으로 이동해요. 이들이 가서 자본을 조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금융 기법을 통해서 쉽게 자본을 모으고 그 자본을 통해서 해군을 키울 수 있게 해줬죠. 결국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대인입니다. 영국의 은행을 꽉 쥐고 있죠.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이기는데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해줬어요.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벨푸어 선언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로스차일드 가문이 시오니즘 운동에 든든한 후원자였는데요. 시오니즘 운동이 뭐냐면 고국 팔레스타인으로 유대 민족 국가를 다시 건설하자는 운동이에요. 벨푸어 선언이 나오게 된 데는 이런 내막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이중계약

그런데 벨푸어 선언이 이중 계약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1915년에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이 전쟁이 끝나고 아랍인의 독립국가건설을 지지한다고 맥마흔 선언을 하죠. 선언이 상충하는 겁니다. 아랍 국가를 만들어 주겠다. 유대인 국가를 만들어 주겠다면서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 러시아는 터키 동부를 통치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공동 관리한다는 협약까지 했는데요. 이런 이유로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이 영국과 약속에 의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영국은 이중 수표를 쓴 거죠. 그리고 각 민족은 이게 내 땅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땅에서 나가면 난민이 되어 갈 데가 없잖아요. 저쪽 민족을 밀어내서 난민으로 만들어야지만 내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근데 지금 UN이라던가 강대국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둘이 사이좋게 지내보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 이 다툼이 끝날 수가 없습니다.

중동 전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일지
팔레스타인 영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의 유입이 더 늘어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분쟁은 더 격화되는데요. 1947년에 제2차 국제연합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 지역으로 5:5 분할 결정을 해요. 영국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빠져나가려고 하다 보니까, 국제연합총회로 넘겨버린 거예요. 여기서는 5:5 반반 정해 준 거죠. 그런데 여기에 둘 다 강한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아랍 쪽 입장에서는 "우리 인구가 3분의 2니까 땅을 3분의 2로 달라"라고 주장했고, 유대인 입장에서는 "여기 땅 소유주가 거의 다 유대인들이니까 우리한테 땅을 다 줘야지 왜 반반이냐?"라고 하면서 따졌던 거죠.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강대국들은 식민지 통치를 안 하고 철군하게 되는데 1948년 5월 14일 영국군이 이 문제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철군하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날 유대인은 이스라엘 독립선언을 하게 되죠. 그리고 이틀 뒤 5월 16일 이스라엘을 몰아내기 위해서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병력 2만 명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군합니다. 그 뒤부터 벌어지는 게 중동의 1차, 2차, 3차, 4차 전쟁이고 최근에 뉴스에서 나오는 제5차 중동 전쟁 가능성이 이런 이유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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